김해선 사건 / 고창 미성년자 연쇄 강간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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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범죄와 살인사건이 다 안타깝고 슬프겠지만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범죄는 정말 너무나도 화가 나고 슬픈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나 범인이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집행을 하지 않아 지금까지 살아서 복역 중인 사건이라면 너무나도 화가 납니다.

 

 

이 사건은 2000년 10월 25일 저녁,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서 첫 희생자가 발견됩니다. 

희생자의 나이는 고작 11살. 학교 근처에 사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정양은 걸어서 2시간 이상 걸리는 먼 곳에 살기 때문에 항상 집에 전화를 해서 엄마나 아빠에게 데리러 오라고 해야 했습니다. 그 날도 역시 그랬죠.

오후 3시 30분쯤 수업이 끝난 뒤 오후 5시 10분까지 친구들과 놀던 정양은 시간이 늦었다며 친구들과 헤어졌고, 단짝 친구와 함께 집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정양은 인근 중학교 정문에 있는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은 중학생 오빠가 엄마에게 데리러 가시라고 전해주겠다며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다시 친구와 함께 집을 향해 걸어가다가 문구점에서 강아지 인형을 산 뒤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때가 6시 10분쯤이었어요.

한편, 정양의 어머니는 7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던 아이를 찾다가 인근 파출소에 실종신고를 합니다. 경찰과 인근 주민들이 밤새 아이를 찾았지만 결국 아이를 찾지 못했어요. 

 

 

다음날 9시 30분. 정양은 해리면 평지리 야산의 양지바른 무덤 위에 알몸 상태로 십자기 모양으로 반듯하게 눕혀져 있는 채로 발견이 되었습니다. 사체가 발견된 곳은 담양-해리 간 국도변에서 샛길로 따라 올라온 지점으로 아이가 사는 마을까지는 한참 더 들어가야 하는 곳으로 평소 사람들의 통행이 드문 장소였습니다.

정양의 셔츠와 점퍼는 둘둘 말린 채 베개처럼 목을 받치고 있었고, 바지는 접힌 채 방석처럼 엉덩이 밑에 놓여 있었습니다. 흉기로 찢어낸 아이의 옷과 잘린 바지 조각, 운동화 등은 모두 책가방 속에 가지런히 담긴 채 아이의 발 옆에 놓여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음부는 쓸린 상처와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국과수 부검 결과 범인의 손이나 사물로 성추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숨진 것으로 발표가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조용한 시골마을이 살인 사건 현장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사체 발견 직후 경찰은 현장을 철저히 봉쇄했고, 현미경을 들고 바닥을 훑던 감식반은 족적과 모발, 체모 몇 점의 소중한 증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범행 후 사체를 그냥 유기하는 보통의 수법과는 달리 사체를 보란 듯이 십자가 형태로 눕혀놓은 것은 범인이 어떠한 메세지를 전달하려 했던 걸까요?

전문 범죄 분석이 도입되지 않았던 고창 경찰서는 현장 수사와 탐문 수사를 진행한 끝에 피해자를 봤다는 목격자와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봤다는 목격자들이 나오면서 용의자의 몽타주가 나왔고 수사는 활기를 띄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유력 용의자들은 알리바이가 있었고, 뚜렷한 혐의점이 없었기 때문에 지지부진한 수사가 계속되었고 그렇게 첫 범행이 한 55일 만에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12월 19일 저녁, 정양이 피살된 곳에서 4km 정도 떨어진 고창군 무장면 만화 마을 비포장 도로에서 함께 귀가하던 중학교 1학년 남동생과 18살의 여고생 남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3시 40분 수업을 마친 박양은 인근 중학교에 다니던 남동생을 만나 함께 귀가하던 중 친구의 집에 들러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박양은 수년 전 아버지를 여의고 취로사업에 나가는 어머니를 대신해 궂은 집안일도 도맡아 해 오던 소문난 효녀였습니다. 남매는 5시경 친구의 집에서 나왔고 이것이 이 아이들의 살아있을 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수색 끝에 다음날 12월 20일 오전 8시 20분경 정수장 인근 풀밭에서 박 군의 사체가 발견됩니다. 박 군은 양손이 운동화 끈으로 결박되고 목도리로 눈이 가려진 상태로 논두렁에 엎어져 있었고 옷은 다 입혀져 있던 상태였습니다. 박 군의 사체에서 불과 5m 떨어진 곳에서 여성의 브래지어와 팬티가 발견되었고 정황상 박양의 것으로 보였습니다. 형장 주변을 면밀히 수색하던 수사팀은 박 군이 살해된 곳에서 500m 떨어진 야한 외진 무덤가에 박양이 소나무 밑동에 사지가 묶여있었고, 상의는 단추가 풀어진 채 헤쳐져 있었으며 체크무늬 치마는 뒤집힌 채 가슴 윗부분까지 올려져 얼굴을 덮고 있었습니다.

두 손과 양 발목은 노끈과 스타킹으로 결박되어 제각기 소나무 밑동에 묶여있었는데 입에는 장갑이 물려있었습니다. 목과 다리, 가슴, 복부, 음부 등 여러 곳에 칼로 찔리거나 벤 상처가 있는 등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오른쪽 허벅지는 가로 15cm, 세로 20cm 정도를 도려내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수사 결과 현장에 남겨진 족적은 첫 번째 사건과 일치했죠. 그리고 탐문 도중 결정적인 목격자가 나타났습니다. 첫번째 목격자는 피해자가 실종되기 30분 전에 같은 장소에서 수상한 남자에게 뒤쫓기다가 간신히 도망친 여고생으로, 목격자가 말한 수상한 남자의 인상착의가 첫번째 용의자와 일치했습니다. 곧이어 다른 여고생 또한 두 번째 범행이 이루어 지기 하루 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인상착의의 남성이 쫓아오는 느낌을 받아 뛰어서 귀가했다고 합니다. 

12월 20일, 수사진은 범인이 동일범이라고 확신하고 도주 시 남긴 족적의 방향에 있는 모든 집들을 방문해 차례대로 탐문수사를 펼친 결과 야산 반대편 집 마당에서 범행 장소에서 나온 족적과 동일한 발자국이 찍힌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집 안에는 노부부만 있었습니다. 노부부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경찰은 아들의 행방을 묻자 "산에 나무하러 갔다"라는 말을 들었고, 그 사이 경찰은 집 내부와 주변을 뒤지며 증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들 방 장롱 위에서 범행 시 사용한 노끈과 피 묻은 낚시용 칼, 칼집, 그리고 혈흔이 묻은 옷가지들이 나와 이 사람이 범인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전과 7범 김해선

1969년 5월 6일생으로 175cm의 키에 몸무게는 95kg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상습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려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 동물들을 괴롭히며 스트레스를 풀던 그는 중학생이 되어 이웃집 소를 낫으로 찍어 죽이는 등 극도로 폭력적인 성향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는 2학년까지 다니고 그만두고 가출을 했으며 친구도 없었고 주위 사람들의 기억 속엔 '무섭고 이상한 아이'라고 남아있었습니다.

16살에 절도 혐의로 가정법원에 송치되고 24세 때는 짝사랑하던 여자를 강간할 목적으로 식칼을 소지한 채 여자의 방에 침입했다가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26살에 집행유예가 끝나자마자 펜팔을 통해 알게 된 여자를 자취방으로 유인해 강간하여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죠. 그렇게 그는 전과 7범이 되었습니다.

27세에 부산에 가서 원양어선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선원들의 매듭 사용법을 배웠고, 회칼을 능숙하게 다루게 되었습니다. 그라다 부산 다방 종업원과 사귀기도 했지만 선원 생활에서 번 수천만원의 돈을 다른 남자와 만나는데 썼다는 사실에 격분하며 다방 종업원과 애인이 자고 있던 집에 도시가스관을 잘라 불을 지르기로 마음먹었지만 관두고 2000년 7월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뒤, 이 같은 사건을 저지르게 된 것이죠.

살인 현장에서 채취한 음모와 모발을 분석한 결과 AB형임이 밝혀졌는데 이는 김해선의 혈액형과 일치했습니다. 박양의 살덩이는 김해선이 집 앞 도랑에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긴 채 버려져 있었습니다. 경찰에게 살해 경뤼를 털어놓기 전 "자백을 할 테니 언론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말고, 현장 검증을 할 때 자신에게 수갑을 채우지 말고, 가족들에게는 범행 사실을 알리지 말고, 소주 좀 달라"라고 요청을 했대요.

 

 

실제로 경찰에 소주를 건넸고 소주를 마시는 그는 일체의 범행사실을 자백했다고 합니다. 취조 도중 드러누워 자는 모습도 보였는데 그가 술에 취해있었기 때문이라고..

 

1차 사건

외지를 떠돌다 3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김해선은 딱히 하는 일 없이 매일매일 살고 있었습니다. 10월 25일, 아침부터 복분자주를 거하게 마신 김해선은 만취한 상태로 야산을 쏘다니다가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죠, 그때, 고창군 해리면 편지리 청룡산 부근 도로에서 홀로 걸어오던 정양을 발견하게 되고 순간적으로 몹쓸 마음을 먹고 맙니다. 김해선이 정양에게 다가가자 정양은 소리를 질렀고, 이를 제압해 끌고 올라간 김해선은 얼른 정양의 입을 틀어막고 목을 졸랐습니다. 실신한 정양의 옷을 벗겨내고 정양의 가방에서 꺼낸 커터칼로 옷가지들을 잘라 아이의 신체를 결박했죠.

김해선은 정양을 성추행하다가 비명을 막기 위해 재갈까지 물렸지만 아이의 호흡이 끊어졌고, 아이를 30m가량 떨어진 무덤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인공호흡을 하였지만 정양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고 길 쪽에서 아이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김해선은 아이를 무덤에 반듯하게 눕혀놓고 옷가지를 가방에 가지런히 넣어 놓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2차 사건

12월 19일 오후 1시, 죄책감과 구차한 인생에 대한 비관으로 우울해진 기분을 달래기 위해 복분자주를 6컵이나 마시고 만취한 상태에서 칼과 노끈, 장갑이 든 가방을 가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자살을 하기 위해 들고 다녔다고 말했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죠.

무장면 면소재지에 있는 중, 고교 하교시간에 맞춰 국도변에 숨어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김해선은 오후 4시 30분 강양이 만화리로 통하는 비포장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200m가량 뒤따라가다 여고생이 눈치를 채고 뛰어가자 쫓아가려 했으나 때마침 오토바이 한 대가 오면서 놓치고 말았습니다.

아쉬운 기분이 든 김해선은 날이 어둑어둑해질 동안 다른 범행 대상을 찾아 인근 정수장 부근을 배회하다가 박양 남매와 마주쳤습니다. 김해선은 이들을 도로 옆 2m가량 논바닥으로 밀어 넘어뜨린 뒤 비명을 지르며 반항하는 남동생 먼저 목을 졸라 실신시킨 뒤 운동화를 벗겨내 끈을 풀어 양손을 묶었고, 노끈으로 재차 목을 졸라 살해했습니다. 누나는 겁에 질려 도망가지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죠.

 

 

동생은 살해한 김해선은 몸을 돌려 살려달라는 누나를 보고는 칼을 떠내 조용히 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했고, 양 손을 노끈으로 결박했습니다. 이후 속옷을 칼로 잘라내고 강간을 하려 했으나 여학생이 자꾸 반향을 하고 사람이 다니는 길에 가까운 곳이어서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울며 애원하는 여학생을 끌고 이동전화 기지국이 있는 야산까지 끌고 갑니다.

 

 

무덤가 소나무 숲으로 박양을 데리고 가 바닥에 뉘고 결박된 두 손을 소나무 밑동에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준비해 간 노끈이 부족해지자 한쪽 스타킹을 벗겨내 노끈과 함께 두 다리를 묶는 데 사용했습니다.

 

 

스웨터를 잘라내 여학생의 등 뒤에 깔고 상의 단추를 모두 끌러 치마를 들쳐 올리고 강간했지만, 욕구가 해소되지 않자 칼로 여학생의 몸 곳곳을 찌르고 베어 고문하다가 마지막에 심장을 찔러 살해했습니다.

그러곤 30분 동안 사체 옆에서 본인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담배를 피우다가 피해자의 허벅지 살을 칼로 도려내 가방에 담에 8시쯤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는 허벅지 살점 일부를 먹기도 했다고 답했지만 왜 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성 없는 김해선

 

1치 범행 후 산에서 내려온 김해선은 시장통 성인 오락실에 들어가 동전을 바꾸고 빠찡코와 유사한 오락(과일 게임)을 20분 정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복분자주를 마시던 중 TV 뉴스를 보며 자신이 살해한 아이가 누구였고, 수사가 어떤 반향으로 진행되는지 세세한 정보를 얻었다고 합니다.

가끔은 죄책감이 들어 자살을 하고 싶었지만 술이 들어가면 모든 걸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범행을 할 때 다 못 채웠던 욕망을 상상 속에서 대신 채우기도 했다.. 는 파렴치한 망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그가 방성을 했을까 의문이 드네요.

2차 범행 후 집에 들아가 본 드라마와 토크쇼의 내용도 뚜렷이 기억한다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표창원의 '한국의 연쇄살인'저서에 따르면 그는 혈액형 확인을 위해 혈액 채취 등의 여부를 묻는 경찰의 질문에 "주사기는 싫으니 머리카락을 뽑아가라"라고 말할 정도로 자기애가 너무나 강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김해선은 '한국의 연쇄살인' 저서에 자신의 얼굴이 나왔다고 고소까지 했대요.

더불어 그가 2차 범행에서 박양을 더 잔인하게 살해한 이유로 아이가 처녀가 아니었다는 둥, 예전 여자가 떠올랐다는 둥 횡설수설 늘어놓았다고 합니다.

 

 

잡힌 후에도 자기의 죄를 반성하기는커녕 피해자들이 그 시간에 거기 있었기 때문에 범행을 당한 것이라며 피해자 탓을 시전 하기도 했고 현장검증에서 담담하게 자신의 범행을 보여주었으며 대충 빨리 하고 가자며 경찰에게 재촉하는 뻔뻔한 모습도 보이기도 했어요.

 

판결

2001년 12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지만 지금 광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라 합니다.

수 차례 어린 생명을 잔혹하게 유린하였음에도 자기 몸에 주삿바늘을 꽂는 일 조차 무서워했던 김해선은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대한민국은 사형이 폐지된 나라이기 때문에 그는 가석방 없는 무기수로 현재까지 수감되어 있습니다.

 

너무너무 너무 화딱지가 나는 사건입니다.

도대체..

이런 쓰레기에게...

밥을 먹여야 합니까?

따뜻하게 잘 권리를 줘야 합니까?

아이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첫번째 피해자는 제 첫째 아들과 같은 나이더라구요...

더욱 기억에 남고 가슴이 먹먹해진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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