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도 컨테이너실 살인사건

 

전남 여수시 돌산읍에는 국내에서 아홉 번째로 큰 '돌산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450m의 '돌산대교'가 여수시내와 돌산도를 연결해주었죠. 인심 좋고 아름다운 돌산도에 억울하게 죽은 한 남자가 있습니다.

굴삭기 기사인 이승래씨는 살던 집에 도로에 편입되자 당장 살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의 누나는 매형과 함께 돌산읍 우두리에서 중장비학원을 운영하고 있었죠. 갈 곳이 었던 그는 당분간 누나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습니다. 학원 옆에 길이 9m의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그 곳을 임시거처로 삼았습니다. 가끔 굴삭기 일을 하면서 학원 일도 도와주기도 했죠.

2005년 12월 3일 오후 6시 20분 쯤....그의 동료 굴착기 기사인 A씨가 컨테이너를 찾았습니다. 함께 일을 하기로 했는데 며칠 째 연락이 되지 않았던거죠. 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비릿한 피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컨테이너 안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고 이씨가 칼에 찔린 채 숨져있었습니다. 

 

 

「부검 결과

시신의 모습은 너무 참혹했습니다. 칼에 찔린 것으로 보이는 수 많은 자창이 남아있었죠. 누가 그를 이렇게 잔인하게 살해한걸까요?

그의 몸에는 무려 200개가 넘은 칼 자국이 발견되었습니다. 머리, 목, 어깨, 등, 하체까지 온 몸에 자창이 있었고, 주로 등에 집중되었습니다.

사람의 머리뼈는 뇌를 보호하기 위해 엄청 단단하잖아요. 과도로 찔러도 바로 관통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칼날이 휘거나 부러진다고 해요. 분명 살해에 쓰인 칼에도 변형이 생겼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칼로 몸을 찔렀다면 변형에 따른 상처가 있어야 하지만 몸에 난 상처와 크기와 모양이 머리에 사용된 흉기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즉, 머리에 사용한 흉기와 몸에 사용한 흉기가 다른 칼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맨손으로 과도를 잡고 사람을 내리 치면 칼날에 자기 손바닥도 상처를 입게 됩니다. 분명 범인의 손에 이때 생긴 상처가 있을것이라 생각이 드네요.

숨진 이씨는 키 180cm, 몸무게 91kg의 건장한 체격이였습니다. 만약 이씨가 정면으로 맞섰다면 손에는 방어흔이 있어야겠죠. 하지만 그의 손은 깨끗했습니다. 제대로 저항 조차 하지 못하고 당했던거죠. 술에 취해 범인에게 당했다는 소리도 있었지만 그의 알콜 놀도는 0.03%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사건 현장

국과수는 범인이 컨테이너에 침입한 후 이씨의 배후에서 등과 목을 찔렀다고 봤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머리 뒷부분과 등쪽에 몰려 있는 상처였죠. 범인이 컨테이너에 침입했을 당시 이씨는 엎드린 상태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범인은 등쪽에 바짝 붙어 머리와 목, 등을 순간적으로 찌른 것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불시에 공격을 당한 이씨는 등쪽에 붙은 범인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겠죠. 오른발을 딛고 일어서려다 흘린 피에 미끄러졌습니다. 범인은 이런 이씨를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 목을 찔렀고, 이때  뿜어져 나온 피가 소파에 다량 묻게 된거죠.

 

 

이상한 것은 수많은 자창에 비해 컨테이너 내부에 흘린 피는 많지 않았다는 점이였습니다. 이것은 이씨가 숨이 끊어진 뒤에 범인이 재차 칼로 찔렀기 때문이죠. 또 하나는 침대용 매트리스가 상당부분 바닥에 있던 피를 흡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통 매트리스는 땀의 흡수를 막기 위해 흡수력이 낮은 재질을 사용하죠. 이씨가 흘린 피를 매트리스가 흡수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것으로 판단이 되었습니다.

범인이 컨테이너에 침입했을 당시 매트리스는 이씨가 깔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는 세워진 상태였죠. 즉 범인은 매트리스에 피가 스며들 때까지 꽤 오랜시간 컨테이너에 머물러 있었다고 봐야 했습니다. 실험 결과 약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고 이는 범인이 최소 오전 3시까지는 컨테이너 안에 있었다고 봐야 했습니다.

 

「사망 시간

그렇다면 이씨는 언제 사망한 것일까요. 이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12월1일 오후 10시20분쯤입니다. 이씨의 누나 부부는 저녁을 먹은 뒤 한 방송프로그램을 시청했습니다. 방송이 끝난 후 잠시 학원에 들렀다가 이씨와 마주쳤죠. 이때 이씨는 택시에서 내려 김밥을 들고 컨테이너로 들어가는 중이었습니다. 

이씨의 위에서는 당시 먹었던 것으로 보이는 김과 밥알이 나왔습니다. 김밥이 소화가 되기 전에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죠. 이씨가 김밥을 먹은 뒤 약 2~3시간 뒤에 살해당했다면 범행시간은 12월2일 오전 0시20분에서 1시20분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상한 전투화 자국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정밀 감식을 했습니다. 그 결과 현장의 혈흔은 모두 피해자의 것으로 분석이 되었죠. 그나마 현장에 남은 범인의 유일한 흔적은 신발 자국이었습니다. 피를 밟고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

경찰이 신발의 문양을 확인했더니 국방부에서 보급하는 전투화였습니다. 신발의 크기는 270mm. 

 

「살해 동기?

경찰은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였습니다. 이씨 가족은 물론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을 벌였지만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은 없었죠. 범죄학자들은 피해자의 몸에 있는 수많은 자창 등은 보통 원한에 의한 살인과는 다르다고 분석했습니다.

범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금품을 노렸다면 뒤진 흔적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씨의 컨테이너에서는 뒤진 흔적이나 없어진 물건은 없었죠. 또 금품이 목적이었다면 이씨의 몸에 수많은 자창을 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범인은 처음부터 이씨의 목숨을 노리고 컨테이너에 침입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럴 경우 이씨와는 아는 사이여야 하죠. 

 

 

「유력한 용의자 중장비 학원생 강씨

 그는 경찰이 추정한 '용의자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사건 전후 행적도 수상했죠. 더욱이 그는 사건 8개월 후 여수 시내에 있는 한 파출소를 찾아가 '내가 이승례를 죽였다'고 자수하고 자필로 '자수서'까지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후 진술을 번복했죠. 엄마와 싸우고 홧김에 거짓 자백을 했다는게 그의 주장이였습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발견되지 않았고 그가 정신병력이 있던 것을 감안해 경찰은 그를 풀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정황이 강씨를 가리키고 있다.」

이 사건의 모든 정황은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강씨는 피해자의 누나 부부가 운영하는 중장비(지게차 5개월 과정) 학원생이었어요. 강씨는 학원 수료를 8일 앞둔 11월30일 돌연 ‘자퇴서’를 제출했습니다. ‘취업’이 이유였으나 그는 어디에도 취업한 사실이 없었죠. 피해자 시신이 발견된 11월3일 강씨는 어머니와 갑작스럽게 여수를 떠났습니다. 당시 강씨 어머니는 직장에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고 무단결근을 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강씨의 소재를 파악해 그를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강씨의 오른손 손가락에는 상처가 있었죠. 경찰이 상처 부위를 촬영하려고 하자 강씨는 거부를 했습니다. 경찰은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서야 강씨의 손 상처를 촬영할 수 있었죠. 꽤나 크고 깊게 베인 상처였습니다. 강씨는 이 상처에 대해 “11월쯤 집에서 생긴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는 강씨가 학원에 다닐 때였는데 학원생 누구도 그의 상처를 본 사람은 없었다. 

강씨는 2004년 6월 육군하사로 의병제대했습니다. 그는 ‘양극성 정동 장애’를 앓고 있었죠. 쉽게 말해 기분에 문제가 생기는 장애입니다. 갑자기 과도하게 기분이 좋거나 과도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증상을 보이죠. 더욱이 강씨는 제대하면서 전투화 두 켤레를 가지고 나왔는데, 사건 현장에 남아 있는 것과 문양과 크기가 동일했습니다. 경찰 압수수색 당시 강씨 집에는 두 켤레 중 한 켤레만 남아 있었다. 

강씨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가 유일했습니다. 그는 여수를 떠나기 직전 집에만 있었다고 진술했죠. 강씨는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않았고 운전면허도 없었으며 신용카드도 발급받지 않았습니다. 그의 알리바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죠.

 

 

경찰은 강씨 집 압수수색 당시 그가 쓴 수양록에서 ‘경찰이 나를 의심하는 모양이다. 검찰도 나를 잡지 못할 것이다. 이 알리바이는 깰 수 없고 물증도 없다’는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강씨가 자수 당시 작성한 자수서는 아주 구체적이였습니다. 범인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내용이죠. 강씨에 따르면 그는 사건 전날에 이씨를 죽이려고 시도했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아 돌아갔고, 이날 필요한 물품(칼 두자루, 워커, 군복)을 챙겨왔다고 자세히 적었습니다.

경찰이 강씨가 칼을 구매했다는 마트에 가서 확인해보니 2005년 10월30일 오전 과도 2개를 현금으로 구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특히 자수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분노를 일으키게 하여 고 이승래씨를 200방 넘게 찔러 죽임’이라는 대목입니다.

피해자 이씨의 몸에 수많은 자창이 있었다는 것을 강씨가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말한 숫자는 국과수에서 제시한 숫자와 정확하게 일치했죠.

강씨가 컨테이너 옆에 있던 진돗개에게 물과 먹이를 챙겨주는 등 교감이 있었다는 증언도 잇따랐습니다. 범인이 비면식범이라면 분명 진돗개는 짖었을테니까요. 이렇듯 강씨를 의심할 수 있는 심증은 차고 넘치지만 이를 뒷받침할 물증은 나오지 않아 결국 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범행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강 씨와 강 씨 모친....진실은 그들만이 알고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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