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용민이가 마신 요구르트에 살충제 넣은 아빠 김영세. 좋게 이야기 할 때 얼른 자수해라.

 

너무나 어렸던 12살 남자아이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사건입니다. 게다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친부였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죠. 친부는 아직까지 잠적한 채 침묵하고있어 그 날의 진실이 궁금해집니다.

 

「울산 살충제 요구르트 사건 일지

1998년 7월 19일. 울산에서 당시 12살이였던 '김용민'군은 살충제가 다량 들어간 요구르트를 먹고 며칠 후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뱃일을 떠났다가 1년만에 돌아온 당시 49세의 아버지 '김영세'와 함께 햄버거를 먹기 위해 백화점에 갔다가 변을 당한거죠.

용민이는 6살에 교통사고를 당해 거동이 불편한 아이였습니다. 아버지는 굳이 2km라는 먼 거리에 있는 백화점에 아이를 데리고 굳이 걸어서 도착을 했습니다.

음료수 코너에서 아이에게 딸기맛 요구르트 3개와 샌드위치를 샀습니다. 용민이는 요구르트를 한 모금 마신 후 맛이 이상하다며 고통을 호소하게 됩니다.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혼수상태에 빠져머렸고 7월 22일 새벽 1시경 끝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국과수 정밀분석 결과 , 용민이가 마셨던 요구르트에서 살충제 성분인 '포스파미돈'62.2㎍/㎖ 검출이 되었습니다. 이 살충제는 소나무에 붙어사는 진딧물이나 솔잎혹파리, 솔껍질깍지벌레등을 죽이는데 쓰였습니다. 소량만 먹어도 사망하는 맹독성 약물이죠. 2012년 판매 중단되었지만 사건 당시 농약상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살충제였어요. 불특정 다수를 노린 독극물 주입 가능성으로 인해 울산에 사는 사람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유력 용의자는 아이의 아빠?

국과수 정밀분석 결과 요구르트 용기에 주삿바늘을 찌른 흔적은 없었습니다. 용민이가 마신 요구르트는 바닥이 사각으로 된 우유갑 모양이었어요. 양손으로 입구를 잡아당겨야 열 수 있고 한번 뜯으면 모양이 어긋나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죠. 경찰은 범인이 요구르트 입구를 개봉해 살충제를 넣은 뒤 다시 붙였을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국과수는 입구가 뜯긴 흔적이나 다른 접착제 성분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범행은 백화점 안에서 일어난 게 분명했습니다. 경찰은 백화점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용민이와 아버지 김씨가 지하 1층 식품 매장에 오후 5시 46분 들어오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11분 후인 오후 5시 57분 요구르트 매대로부터 12m 떨어진 계산대에서 김씨가 물건값을 치르는 장면도 보였죠. 용민이가 요구르트를 마신 곳은 계산대에서 44m 거리의 샌드위치 매장이었습니다. 20여분 사이 56m 범위에서 누군가 요구르트에 살충제를 넣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경찰이 수사망을 좁히고 있을 때 갑자기 아버지 김씨가 사라졌습니다. 용민이가 숨진 지 이틀 만인 24일 오전 10시쯤 병원 빈소를 나간 뒤 연락이 끊겼어요. 김씨는 전날인 23일 오후 10시부터 날을 넘겨 오전 2시까지 4시간 동안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습니다. 빈소에 돌아온 김씨는 30분 정도 친척들과 술을 마시며 이런 얘기를 털어놓았죠.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것 같아. 경찰서도 몇 번 더 가야 하고….” 2시간밖에 자지 못한 김씨는 날이 밝자 “쉬고 오겠다”며 큰아들 친구의 승용차를 타고 나갔습니다. 13㎞ 떨어진 삼산동의 목욕탕에 들어간 김씨는 그 길로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경찰은 앞선 두 차례 조사를 통해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김씨가 사라진 24일 오후 이미 국과수에 거짓말 탐지기 수사를 의뢰한 상태였습니다.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죠. 김씨는 의식을 잃은 아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며 매장으로 20m를 되돌아가 요구르트를 가져왔습니다. 또 용민이가 숨지자 큰아들에게 “중형차인 크레도스를 사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장례식장에서 이런 말도 자주 했다고 합니다. “백화점이 해결해 주지 않으면 죽은 애 리어카에 싣고 시위할 거야.”

 

또한 아빠가 사건 전부터 수차례 같은 백화점에서 같은 요구르트를 구입했으며 사건 당일엔 용민이를 병원에 데려가기 전에 독극물이 들었다며 백화점에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요구르트에 독극물이 들어있다고 밝혀진것은 사건 8일 뒤였답니다.

1998년 7월 19일 울산의 한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구입한 요구르트에 살충제를 타 아들에게 마시게 해 사망케 한 아버지 김영세(오른쪽·당시 49세)씨가 같은 달 20일 사건 현장에서 검증을 하고 있다. 김씨는 매장 직원에게 요구르트에서 이상한 약 냄새가 난다며 맡아 보라고 했다.

 

「수상한 아빠

아빠는 동네의 소문조차 좋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6살에 당했던 교통사고로 보험금을 타게 되었는데 그 돈으로 아이를 치료하는 대신 도박으로 모두 탕진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1년간 뱃일로 돈을 꽤 모았다는 아빠의 진술과는 달리 8일만에 뱃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관뒀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아빠에게 요구르트를 판매한 백화점 직원의 진술도 묘했는데요. 중환자실에서 아들이 죽어가는데도 온통 흰옷을 입은 채 병원을 왔다갔다 했으며 웃는 모습으로 병원을 나서는 모습도 보았다는겁니다.

그리고 사건 당시 아이는 속옷도 입지 않은 채 남루한 차림이였지만, 아빠는 부자처럼 말끔한 차림새였다고 합니다. 

또한 살충제 '포스파미돈'은 붉은 색깔에 무취, 단맛이 나지만 그가 백화점에서 독극물이 있다고 신고했을때 요구르트에서 시큼한 식초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고 하는 점도 수상한 부분입니다. 

 

보통 백화점에서 음식을 먹고 탈이 나면 '식중독'을 먼저 의심하잖아요. 사건이 일어난 직후부터 계속 독극물타령을 하는 김영세를 보고 당연히 수상 하겠죠?

 

백화점 CCTV에서도 이상한 점이 포착되었습니다. 김씨는 사건이 발생한 19일 처음 백화점에 갔다고 진술했지만 앞서 17일과 18일에도 백화점 식품 매장을 찾아가 음료수를 산 것으로 확인됐어요. 범행을 연습하고 장소를 물색했다는 의혹이 한층 짙어지는 부분이였죠.

 

「가정사..」

1976년 결혼한 김씨는 부인과 2남 3녀를 낳았습니다. 용민이는 막내아들이었어요. 김씨는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도장공으로 일해 모은 돈으로 경기 남양주에서 전자제품 가게를 운영하다가 큰 손해를 봤습니다. 이후 1983년 울산으로 이주해 금속업체를 전전하며 일했지만 불운은 이어졌죠. 1995년 부인이 상의 없이 2000만원을 남에게 빌려준 일로 부부 싸움이 잦았습니다. 결국 부인이 먼저 집을 떠났고 1997년 5월 김씨도 가출하고 맙니다. 집에는 5남매만 남았죠.

 

외환위기로 실직한 김씨는 극심한 경제적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도박판을 기웃거리다 은행에 340만원의 빚을 졌고 자식들끼리 살던 집은 8개월 동안 12만원의 월세가 밀린 상태였습니다. 요금을 내지 못해 전화가 끊겼고 자신이 묵던 여관비도 몇 개월째 밀렸습니다. 사건 3일 전인 16일 오후 8시 아이들만 지내던 집에 김씨가 나타났습니다. 1년 2개월 만에 만난 아버지를 가장 반긴 건 막내 용민이었죠. 용민이는 6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와 척추를 크게 다쳤습니다. 후유증으로 두 다리를 심하게 절었고 정신지체도 있었습니다.



당시 공소장에 따르면 평소에도 술을 마시면 “약이라도 먹여 (용민이를) 죽여야겠다”고 말했던 김씨는 아들에게 농약 넣은 음료수를 먹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들이 죽으면 음료 제조회사나 백화점에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할 계획이었던거예요.


「잔인한 사건 계획」

17일 오후 6시 김씨는 백화점 식품 매장에 가서 과자 2개와 음료수 1개를 샀습니다.

다음날 18일 오전 11시 15분에도 같은 장소에서 종이팩 주스 1개와 캔음료 1개를 구입한 다음 아들에게 먹일 장소를 찾았습니다.

사건 당일이었던 7월 19일. 오후 5시 10분쯤 김씨는 “햄버거를 사 주겠다”며 용민이를 데리고 집을 나갔습니다. 백화점에 도착한 김씨는 홀로 식품 매장에 들어가 180㎖ 요구르트 3개 1묶음을 골라 계산했죠. 지하 1층 화장실에 들어간 김씨는 이 중 한 개에만 살충제를 넣었습니다. 용민이를 샌드위치 매장에 데리고 간 김씨는 살충제를 넣은 요구르트를 직접 아이에게 건네고 말았습니다.

 

「공소시효를 하루 남기고...

당시 사건이 일어난 후 김영세가 잠적해버리고 잊혀지나 했지만 김영세가 행방불명이 된 후 2000년 공소가 중지되었습니다. 객관적인 범죄 혐의가 충분해도 피의자의 소재가 불명확하면 수사를 멈출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김영세를 잡으면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러다가 2013년 6월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재조사에서 제조 과정에서 독극물이 절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당시 김영세의 진술이 신빙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판명되어 공소시효를 하루 앞둔 2013년 7월 17일, 재차 기소되어 공소시효가 15년 더 연장이 되었습니다. 아직 김영세는 검거되지 않아 재판이 시작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보상금을 이유로 아들을 독상한 김영세가 아직 살아있다면 70세가 넘은 노인일겁니다. 지금에야 CCTV가 너무 많아서 어디로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찾을 수 있지만 그때는 오로지 탐문이나 제보에 의존했을때니..... 

하....아이를 키우는 엄마라 그런가 이 사건은 더 마음이 아프고...화가 나고......막.....짜증이 나네요.

돈에 미쳐서 지 새끼를......

 

혹시나 산에 은둔하고 살고 있는 저렇게 생긴 70대 노인분을 알고 계신다면 꼭!!!! 꼭 경찰에 신고해주세요.

12살 어린 용민이의 한을 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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