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살인사건 총정리/용의자는 무기징역수 이춘재. 그는 누구일까?
- ☆★/유용생정
- 2019. 9. 19. 10:51
한국 3대 미제사건으로 유명한 화성 연쇄살인사건.
연극 '날 보러와요', 영화 '살인의 추억', 드라마 '시그널'의 주요 소재로 극화되기도 했던 이 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당시 화성군) 태안읍 일대에서 벌어졌습니다. 10명의 여성 피해자가 5년간 엽기적인 방식으로 살해됐지만 당시 수사력의 한계로 범인을 못 잡은 뼈아픈 미제사건이였죠.
범인은 14세 여중생부터 70대 노인까지 여성 노약자만 골라 범행했으며, 그 전까지는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성도착적인 방식으로 살해해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국내 최초의 연쇄살인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경찰은 1년에 인원 200만명을 동원하고 3000여명의 용의자에 대해 조사했음에도 범인을 잡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단독범의 소행인지, 다수범인지조차 밝혀지지 않았죠. 또 이 연쇄살인사건의 일부 사건 범인으로 지목됐던 용의자가 수사과정에서 목숨을 끊기도 해 과잉수사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자세하게 어떠한 사건이였는지,
어떻게 용의자가 밝혀지게 되었는지,
그는 누구인지 정리를 해보고자합니다.
시신사진은 [더보기]부분을 봐주세요. 조금 많이 깁니다.
<1> 제 1차 사건
가장 먼저 사건은 1986년 9월 14일에 시작됩니다.
화성시 태안읍의 살고 계시는 71세 이완임 할머니는 그날도 밭에서 재배한 채소를 시장에 팔러 외출을 하셨습니다. 채소를 팔고 태안읍에 있는 딸의 집에서 잠을 자고 집에 가던 길이였습니다. 할머니는 새벽 6시 딸이 밥을 먹고 가라는 말을 거절하고 이른 새벽 집 밖을 나가셨습니다. 그것이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셨고 실종되셨습니다. 5일 후 딸의 집에서 약 10분정도 떨어진 목초밭 수풀 사이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셨습니다.
할머니의 시신은 끔찍한 모습이였습니다. 하의가 벗겨진 채 다리가 X자 형태로 모아져있었죠. 눈으로 봤을 땐 성폭행 흔적은 없었습니다. 성추행을 당하신걸로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범인의 지문, 족적, 유류품등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양말과 고무신이 현장에 버려져있었습니다. 채소를 팔아서 벌었던 돈 몇푼도 사라졌죠. 부검 결과 사인은 목졸림으로 인한 질식사로 밝혀졌습니다.
할머니의 질액에서는 양성반응이 나오긴 했지만 정액반응은 나오지 않았어요. 시신에서나 현장에서 범인의 모발이나 체모를 수거하는데도 실패하고 맙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뺑소니 사건으로 마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2> 제 2차 사건
한 달 정도가 흘러 두번째 사건이 발생되었습니다.
1986년 10월 20일 오후 2시경, 송탄시 신정동에 살고 있던 박현숙양은 태안읍 송신리에 살고있는 수양 어머니인 허모씨를 만나기위해 태안읍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그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스무 살이 넘어가면서 뛰어난 미모로 동네에 소문이 났던 박현숙양은 허모씨가 좋은 남자가 있으니 집에 와서 만나보라는 제안에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예쁘게 차려 입고 허모씨의 집에서 남자와 간단히 식사를 한 뒤, 오후 8시 50분 경 더 놀다 가라는 수양 어머니의 만류에도 평소처럼 마을 입구까지 그녀의 배웅을 받은 뒤 1킬로 미터 정도의 긴 농수로 둑길을 걸으며 흐린 날씨로 캄캄한 사방을 해치며 송탄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리고 사흘 뒤인 10월 23일 오후 2시 경 진안리 논 주인에 의해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인 작은 농수로의 콘크리트 수로 속에서 알몸인 채 사망해 있는 것이 발견 됩니다. 그녀의 가슴에는 흉기에 의해 찔린 듯한 상처가 여러 개 있었고, 등에도 흉기로 찍힌 듯한 상처와 하체에서 강간 당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스타킹이 목에 감겨 있었으며 사인은 교살로 밝혀집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또 옷가지들은 농수로 둑에 버려져 있었고 부검 결과 정액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혈액분석에는 실패합니다.
피의자의 것으로 보이던 우유팩, 담배꽁초, 모발이 수거 되어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에서 감정한 결과 B형으로 판정됩니다.
<3> 제 3차 사건
이 때문에 안타깝게도 권정분씨는 4개월여가 지난 1987년 4월 23일 송장 축대 밑에서 논두렁 보수 작업을 하던 논 주인 김모씨에 의해 발견 됩니다.
<4> 제 4차 사건
1986년 12월 14일 일요일, 태안읍 안녕리에 있는 정수 섬유에서 오전근무를 마치고 오후 늦게 수원시내의 한다방에서 맞선을 본 이계숙양,
관항리에서 당시 미인으로 유명했던 그녀를 상대 맞선남은 마음에 들어 했고, 그녀 또한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부모들의 퇴장이후 자리를 옮기고 옮기며 그렇게 선자리가 밤 10시가 넘어 막차가 끊어질때 즈음에야 끝나게 됩니다.
그렇게 맞선남과 헤어져 시내버스에 올라탄 그녀는 제법 굵어진 빗줄기 때문에 정수섬유에 딸려 있는 기숙사에서 잘까도 생각하지만, 집에서 걱정할 어머니와 오빠를 생각하며 마을에서 1킬로 미터나 떨어진 종점인 정남면 면소재지에서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가 당일 집에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밤새도록 그녀를 기다린 끝에 날이 밝자마자 맞선남을 비롯해 여기저기 전화해 보지만, 이틀이 지나도록 그녀의 행방을 알 수 없자 경찰에 신고하게 됩니다.
한편 당시 권정분씨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화성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것을 알지 못했던 경찰은 밤 11시경 정남면에서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는 증인이 나타나며 행방불명으로 판단하고 농수로와 관항천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지만 찾는데는 실패합니다.
그리고 경찰이 사건을 조사하며 당시 버스 운전기사가 선을 보기 위해 곱게 단장했던 이계숙양을 종점에서 내려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사건 발생 일주일이 되던 12월 21일.
경찰과 그녀의 가족을 포함한 주민은 광항리 일대를 샅샅이 뒤지다가 낮 12시 30분경 관항천 둑에서 들깻단으로 덮여 있던 그녀의 시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육안 검시 결과 그녀는 양손이 블라우스로 뒤로 묶였고 거들을 머리에 뒤집어 쓰인채
스타킹으로 몰을 졸려 살해된것으로 보였으며, 블라우스를 벗겼음에도 겉옷이었던 투피스가 입혀져 있었습니다.
그녀의 시신과 마찬가지로 핸드백과 우산, 손수건 등의 유류품들도 들깻단 속에서 나왔고 우산 손잡이 쪽에 혈흔이 묻어 있고 하체가 난행당한것으로 보아 범인이 우산으로 그녀의 하체를 난행한것으로 보입니다.
그녀의 참혹한 모습에 어머니는 현장에서 기절하였고 경찰 역시 진저리를 치며 부검을 위해 시신을 국립과학수사 연구소로 보냅니다.
그 결과 우산대로 하체를 난행했다는 결과와 손수건에서 정액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사건 당일 비가 왔고 정액이 묻은 것도 일주일이나 지났기 때문에 범인의 혈액형을 판독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으며,
B형의 혈액이 검출되나 이계숙양의 혈액형도 B형이었기 때문에 정확한 감정이 불가능 했습니다.
<5> 제 5차 사건
1987년 1월 10일, 졸업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어려운 집안을 돕기 위해서 취직을 서두르던 홍진영양.
홍진영양은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수원시 북문 근처에서 친구를 만나 저녁 8시 30분경까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나서 태안읍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 50분경 태안읍에서 내려 진안리를 거쳐 갈경우 20분이나 더 걸리기 때문에 지름길을 택해 수원시 세류동을 지나 태안읍 진안리와 경계인 반정리 정류소에서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황구천 둑길로 걸어 들어갑니다.
멀리 엔젤악기의 하얀 공장과 집이 있는 안녕리의 낮은 산동네가 보이자 걸음을 재촉하며 둑 중간쯤 온 그녀는 짚가리가 쌓여 있는 곳에 숨어 있던 범인의 습격을 받게 됩니다.
다음날 10일 아침,
해당 논의 주인이 볏짚을 옮기려다 볏단 속에서 그녀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게 됩니다.
그녀는 양손이 브래지어 등으로 묶여 있었고 목에는 목도리가 감겨 있었으며 사인은 목도리로 인한 교살로 밝혀졌습니다.
수사본부 현장에서 1킬로도 떨어져 있지 않았던 곳에서 발견된 그녀의 시신은 특이하게도 옷이 모두 입혀져 있었습니다.
경찰은 현장 주위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음모, 찢긴 천조각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냈습니다.
시신 부검 결과 정액이 검출되었고 천 조각에서도 정액 양성 반응이 나왔으며 질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질액과 정액이 검출되었지만 혈액과 섞여 있어 범인의 혈액형을 판별할 수 없었고 천 조각과 음모등에서 나온 혈액형은 모두 B형으로 판독 되었습니다.
당시 안타깝게도 신원확인을 위해 홍진영양의 아버지가 현장에서 만 18세 딸의 시신을 확인해야 했으며 그마저도 경찰이 현장 보존을 위해 접근을 차단하여 딸을 안아주기는 커녕 그녀의 옷가지만을 확인해야 했고, 곧 현장에 달려온 자신의 아들과 통곡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홍진영양은 아버지가 건축일을 하고 어머니가 공장에 나가 돈을 버는 것이 안쓰러워 부친의 날씨가 풀리면 취직하라는 말을 듣지 않고 서둘러 취직자리를 알아볼 정도로 효녀 였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충남 도대표 탁구선수를 하며 이때 동안 80개가 넘는 상장과 메달을 받았을 만큼 학업과 운동에도 열심이였던 것으로 밝혀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7> 제 7차 사건
당시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서 경찰의 통제로 안기순씨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고 가족들은 오열합니다.
<8> 제 8차 사건
또 위장안에는 소화되지 않은 잡채가 발견되었는데, 이 잡채는 완전히 소화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살해되기 두 시간 이내에 잡채를 먹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가족 중 11월 15일에 생일인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김미정양은 아침에도 잡채를 먹고 점심에도 잡채를 도시락에 싸가서 학교에서 친구들과 먹었다고 합니다.
<9> 제 9차 사건
<2019년 9월, 드디어 범인의 윤곽이 잡히다.>
경찰에서 특정한 진범의 이름은 이춘재. 50대의 남성으로,
비록 공소시효가 끝나 그를 처벌할 순 없지만
무기징역수라니 작게나마 죄값을 받고있던 걸까요...
사형을 시켜도 분이 안풀릴텐데...
지금은 살인사건에 공소시효가 폐지되었지만
왜 살인사건에 공소시효가 있었던건지....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그의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죽은이들이 살아돌아오는 것도 아닌데말이죠...
아침부터 뉴스를 보면서
"와!드디어?" 기분이 좋다가
공소시효 지나서 처벌을 못한단 소리에 어찌나 화가 나던지.......
긴 글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가 부디 편하게 눈감지 못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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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9 10:54 신고
제가 전에 '살인사건'이나 '미스테리 한 일'들을 컨텐츠로 만들어볼까 생각중이라 말씀 드렸었죠? 이번 기회에 또 다른 살인사건이나 미스테리한 일들에 대해 자료를 모으고 포스팅을 해보려 합니다. 자료 모으다가 좀 화가 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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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9 18:51 신고
공소시효때문에 처벌을 못하는건 화가 나지만 누군지 정말 알고 싶긴 하네요. 영화볼때도 많이 화가 났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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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9 20:53 신고
교도소에서 밥 잘 처먹고 있었네요.
행복하세요^^ -
2019.09.20 23:53 신고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고 여러가지 기사가 나오는군요. 처벌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